티스토리 뷰

가끔 별생각 없이 읽은 문장이 오래 남을 때가 있다. 최근에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글쓰기와 관련된 문장을 읽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소설가의 작법에 관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곱씹어볼수록 이 말이 논문을 쓰는 일에도 꽤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밍웨이는 『Death in the Afternoon』에서 이렇게 썼다.
If a writer of prose knows enough of what he is writing about he may omit things that he knows and the reader, if the writer is writing truly enough, will have a feeling of those things as strongly as though the writer had stated them. The dignity of movement of an ice-berg is due to only one-eighth of it being above water. A writer who omits things because he does not know them only makes hollow places in his writing.
간단히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작가가 내용을 충분히 알고 진실하게 쓰면, 다 설명하지 않아도(생략하더라도) 독자는 숨은 의미를 느낀다. 빙산이 물 위에 조금만 드러나도 거대함을 느끼게 하듯, 좋은 글의 힘은 보이지 않는 깊이에서 나온다. 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생략하면 글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텅 비게 된다.
흔히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으로 이야기되는 문장이다. 글에 모든 것을 다 드러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잘 쓴 글은 많은 것을 말하지 않고도 느끼게 한다. 다만 그 생략은 작가가 충분히 알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알고 있기 때문에 생략하는 것과 모르기 때문에 생략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논문 쓰기가 떠올랐다. 논문에서도 생략은 필수다. 모든 배경지식을 설명할 수 없고, 모든 방법론적 선택을 길게 방어할 수 없고, 모든 부가적인 결과를 본문에 넣을 수도 없다. 좋은 논문은 필요한 것을 남기고 나머지를 적절히 덜어내는 글이다. 중요한 것은 생략 자체가 아니라 생략의 이유다. 내가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생략하는 것은 압축이다.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생략하는 것은 구멍이다.
논문을 쓰다 보면 literature review에서 중요한 계보가 빠져 있거나, method를 왜 그렇게 선택했는지 설명이 약하거나, result와 discussion 사이에 논리적 점프가 있거나, limitation으로 인정해야 할 문제를 조용히 지나가면 글 어딘가가 비어 보인다. 신기하게도 이런 빈 곳은 저자보다 독자가 더 빨리 알아챈다. 리뷰어는 특히 더 그렇다.
논문에서 생략해도 되는 것은 내가 설명할 수 있지만 지금은 쓰지 않는 것이다. 생략하면 안 되는 것은 내가 설명할 수 없어서 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재밌어진 나는 다른 작가들의 글쓰기 조언들도 함께 알아보았다.

조지 오웰은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에서 이렇게 말했다.
“What is above all needed is to let the meaning choose the word, and not the other way about.”
의미가 단어를 고르게 해야지, 단어가 의미를 끌고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novel”, “robust”, “significant”, “important”, “meaningful”, “comprehensive” 같은 단어들은 너무 쉽게 나온다. 그런데 그런 단어들이 실제로 정확한 의미를 운반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은 논문에서 흔히 볼 수 있다.
"This study provides a novel and meaningful contribution to the literature."
겉으로는 논문다운 문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엇이 새로운지, 누구에게 meaningful한지, 어떤 literature에 대한 contribution인지, 기존 연구의 이해를 어떻게 바꾸는지가 문장 안에 없다.

조앤 디디온은 「Why I Write」에서 이렇게 썼다.
“I write entirely to find out what I’m thinking, what I’m looking at, what I see and what it means.”
나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내기 위해 쓴다는 말이다.
논문 초고를 쓰기 전에는 내가 내 연구를 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Introduction을 쓰다 보면 내가 정확히 어떤 gap을 겨냥하고 있는지 애매해진다. Method를 쓰다 보면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선택의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Result를 쓰다 보면 데이터가 실제로 말해주는 것과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사이의 차이가 보인다. Discussion을 쓰다 보면 이 논문이 결국 무엇을 주장하는지 다시 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초고는 이미 완성된 생각을 옮겨 적는 과정이 아니다.

아서 퀼러-쿠치의 조언은
“Murder your darlings.”
내가 아끼는 문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표현, 공들여 쓴 장면이라도 글 전체를 위해 필요하지 않다면 지우라는 뜻이다.
논문에서는 이 말이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박사과정에서 논문을 쓰다 보면 특히 버리기 어려운 내용들이 생긴다. 오래 고생해서 얻은 분석, 힘들게 만든 그림, 많이 읽고 정리한 문헌,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해석, 꽤 잘 썼다고 생각하는 문단. 하지만 논문에서 중요한 기준은 내가 그 부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아니다. 그 부분이 이 논문의 main claim을 제대로 뒷받침 하는 지가 중요하다.
때론 낭만에 취해 비약적 의견을 넣은 적이 많은데, 좋은 평가를 받아본적이 없다.
문학이나 논문이나 공통적으로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고, 원하는 바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래서 다른 포맷이지만 좋은 글로써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닮아 보인다.
그러나 이런 블로그 포스팅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평가 받지않고, 원하는 만큼 구조적이면서도 두서없이 글쓰는 순간이 가장 즐겁다. :)

'keep9o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연구주제 포기 (1) | 2026.04.06 |
|---|---|
| 군집 / 멀티 로봇 체계 구조에 대한 생각 (2) | 2025.11.26 |
| [논문 리뷰] Distributed neighbor selection in multi agent network (10) | 2025.08.04 |
| 배터리 모델 간단 정리 (3) | 2024.08.08 |
| 통신 모델 및 관계 간단 정리 (2) | 2024.07.01 |